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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KoreaTraveller

유럽 3개국 여행코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by 권또또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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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안시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나 스위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도시다.

만년설이 뒤덮인 알프스에 둘려 싸여 있고, 겨울 스포츠의 성지라 불리는 샤모니 몽블라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스위스 제네바에서 남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다.

그 도시는 10세기부터 형성된 곳으로, 촘촘한 격자 무늬로 이루어진 시내와 곳곳에 놓인 작은 다리들 때문에 프랑스의 베네치아라 불리기도 한다.

안시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팔레 드 릴이다.

그 건물은 안시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여 흐르는 티우 운하 한 가운데 있는데 중세시대에는 감옥으로 스였다고 한다.

 

장 자크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마지막 페이지에서 16살에 고향 스위스를 떠나 안시 호수에 도착해 4년간 하숙집에서 보냈는데, 그곳의 여주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재치와 미모를 겸비한 대단히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완전한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었던 그 유일하고도 짧은 시절을 이른이 되어서도 자주 회상하곤 했다.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 시절이야말로 나는 진정한 나로 살았다고.”

 

마크 트웨인도 1891년 탈루아에 왔다가 안시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는 안시의 호수 풍경을 보고 이렇게 감탄했단다.

이건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을까?”

그는 유럽과 다른 곳들이라는 책에서 안시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안시는 접하자마자 완벽하다고 인식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처럼 나에게 먹먹한 감동을 주었다.

완벽한 음악, 완벽한 글, 완벽한 그림, 완벽한 기쁨, 완벽한 슬픔이 그렇듯이 말이다.”

 

 

샤모니 몽블랑과 스위스 핵심 10일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 샤모니몽블랑과, 동화같은 마을 스위스 알프스 풍경 속으로 여행해보세요

swiss.nstyletour.com

 

샤모니 일대에는 무려 350km의 트레킹 코스가 개설돼 있다.

그 중 최고로 꼽히는 것이 그랑 발콩노드(Grand Balcon Nord) 트레일이다.

에귀디미디의 중간 승장장인 플랑드레귀에서 몽팅베르 역까지 약 5.7km를 걷는다.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고 조망도 시원해서 큰 부담없이 걸을 만하다.

이정표에는 2시간 30분이 거린다고 나온다.

 

 

 

아를의 빈센트의 집 (노란 집) – Vincent Van Gogh ❤️ - 반 고흐 빈센트

그림 “노란 집”반 고흐는 1888 년에 알레스 (Arles)에서 썼다. 그것에 그는 그 당시에 살았고 일한 집을 묘사했다. 반 고흐는 특별히 집을 빌려서 성벽을 황색으로 칠했습니다. 이 색은 그에게 매

kr.painting-planet.com

아비뇽의 역사는 이렇다.

바티칸 교황청이 프랑스와 세력 다툼 끝에 굴복하여 14세기경인 1309년부터 1377년까지 68년동안 7명의 교황이 아비뇽에서 관좌를 계승하며 교황청의 역할을 담당했다.

기원전 6세기 유대인의 바벨론 유수에 빗대어 교황청의 아비뇽유수라고 말한다.

교황청 바로 옆에는 첨탑에 황금 마리아 상이 곧게 서 있는 노트르담 데 돔 성당이 있다.

그 성당은 교황이 아비뇽으로 들어오기 전인 12세기에 지어졌다.

성당 옆으로 서서히 도는 사선 계단을 따라 오르니 돔 바위 공원인 로셰 데 돔이 나온다.

예루살렘에서 눈에 띄는 황금 사원인 바위의 돔 모스크와 이름이 흡사하다.

 

아를 고대로마원형경기장 빈센트 반 고흐

아를에서 10km, 프로방스에서 약 10km 떨어진 들판에 알퐁스 도데의 풍차 방앗간이 있다. 그 방앗간은 26세의 어린 작가가 발표한 방앗간 소식이라는 단편집의 무대가 된 장소다.

 

 

에즈(Eze) 니스와 모로코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멀리서 보면 독수리 둥지와 비슷해서 독수리의 둥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곳이다.

1920년대에 스웨덴의 윌리엄 왕자가 지중해를 항해하다 이곳의 경관에 빠져 그 뒤로 30녀 동안 해마다 여름이면 이 마을에 있는 중세의 고성을 찾았다.

미국의 가수 비욘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이곳의 특급 호텔에서 여름을 보냈다.

니체는 1880년대 초반, 후일 자기 이름이 붙을 이곳의 산책로에서 현대철학사상에 가장 위대한 작품의 일부를 집필했다.

에즈의 공기 중에는 로즈베리, 장미꽃, 올리브나무, 은매화 향기가 섞여 있다.

길과 길이 만나면 이런 향기들이 만나 하나로 섞인다.

나비들은 수 천 년 자기들이 살아온 것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친퀘테레, 이탈리아- 스투비플래너

절벽 위 사랑스러운 다섯 개의 마을

www.stubbyplanner.com

2. 이탈리아

친퀘테레(Chinque Terre)이탈리아어로 다섯 개의 땅이란 뜻이다.

북쪽에서부터 몬테로소, 베르나차, 코로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 등 다섯 마을이 자동차 도로가 아닌 기찻길로 이어주고 있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첫 시작하는 몬테로소 역까지 3시간 걸리는데, 그곳에서 내려 산책을 하듯 다섯 마을을 둘러보는데 4시간이 걸린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어서 5유로 안팎의 입장료를 내고 둘러보게 된다.

보통 몬테로소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몬테로소-베르나차 구간을 걷는 것이 일반적이다.

몸은 힘들지만 베르나차 항구를 내려다보는 근사한 전망이 보상처럼 펼쳐진다.

마나놀라는 친퀘테레를 대표하는 청명한 바다와 파스텔톤 건물이 어우러진 예쁜 마을이다.

해질 무렵에는 그곳의 노을이 예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친퀘테레 카드 요금은 1일권 트레노 카드 16유로, 트레킹 카드 7.50유로.

산책로 출입 가능 여부 확인 홈페이지를 보라.

 

 

http://mappe.parconazionale5terre.it/plus/index2.html

Cinque Terre Hiking Guide

mappe.parconazionale5terre.it

 

 

3. 스위스

알프스는 6-9월 중에 딱 한 달만 선택한다면 6월이 가장 좋다.

무엇보다도 항공권이 가장 저렴하다.

당신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다면 몽트뢰로 오라

그 말은 프레디 머큐리가 한 말이다.

몽트뢰는 그가 사랑한 도시다.

그는 1978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퀸의 맴버들과 함께 처음 그곳을 찾았다가 매료되었다.

1978년 발간된 재즈부터 유작이 된 메이드 인 해븐까지 여러 앨범에 실린 노래 중 상당수가 몽트뢰의 마운틴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머큐리의 동상이 서 있는 레만 호반의 마르셰 광장(Place du Marche)에는 그를 추모하는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몽트뢰 관광에는 시옹 성(Chateau de Chillon)을 빼놓을 수 없다.

호숫가 바위 섬에 지은 그 성은 마치 물 위에 뜬 마법의 성처럼 신비롭다.

그런데 그 성은 16세기 제네바의 종교개혁 지도자였던 프랑수아 보니바르도 사부아 왕가의 지배에 저항한 죄로 1530년부터 1536년까지 6년간 쇠살에 묶인 채 갇혔다고 한다.

19세기 초에 제네바를 찾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친구 셸리와 함께 배를 타고 레만 호 일대의 문학 탐방에 나섰다가 보나바르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는 1816년에 시옹의 죄수를 발표했다.

시옹 성 내부에는 지하 감옥 외에도 성주의 방, 병사들의 숙소, 창고들, 예배당 등이 있다.

 

 

몽트뢰, 스위스- 스투비플래너

호숫가에 울려퍼지는 한여름의 재즈페스티벌

www.stubbyplanner.com

 

루가노의 몬타놀라에는 헤르만 헤세 박물관이 있다.

독일의 칼프에서 태어난 그는 스위스에서 더 오래 살았다.

어렸을때부터 부모와 함께 스위스 바젤에서 몇해 동안 살았고, 35세 때인 1912년에는 아예 베른으로 이주했다.

1차 세계대전에 끝난 이듬해인 19195월에는 홀로 이탈리와 가까운 몬타놀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아내와 헤어지고 독일에서 집필 금지까지 당한 그는 정신적으로 몹시 피폐한 상태였다.

나치 극우주의자들은 조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한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온갖 비난과 압박을 가했다.

심지어 책 출간에 반대하고 종이 공급까지 막았다.

하지만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그는 자신의 신념을 한 번도 꺾지 않았다.

그는 몬타놀라의 토레 카무치 거리에 위치한 카사 카무치, 카사 로사 라는 집에서 살았다.

심신의 건강과 창작 욕구를 회복한 그는 싯타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회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루가노의 치티노에는 산타 마리아 델리 안졸리 교회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럽교회 치고는 허름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루가노가 가장 아끼는 보석과 같은 벽화가 있다.

바로 16세기에 그려진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인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제자이자 16세기의 거장 베르나르디노 루이니가 그린 그림이다.

여기에는 루이니가 그린 또 다른 명작인 프레스코 벽화 최후의 만찬도 있다.

 

 

루체른 빈사의 사자상

빈사의 사자상은 커다란 암벽에 조각된 것이다.

실제로 사자 한 마리가 지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섬세하다.

이 사자상은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 왕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창에 찔려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방패를 끌어안고 왕가를 지키려는 충성된 사자의 모습앞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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