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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KoreaTraveller

절망을 희망으로 삼는 고하도 여행길

by 권또또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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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하면 다들 유달산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높은 유달산 자락 아래의 낮은 섬을 뜻하는 고하도’(高下島)도 유명하다.

고하도 스테이션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목포 바다를 가로질러 유달산에 오를 수 있다.

또한 고하도의 해안데크를 따라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목화 체험방에서 목화솜도 만져볼 수 있다.

 

고하도 해안 데크는 멋진 곳이다.

고하도 전망대에서 목포대교와 인접한 용머리까지 1km가량 설치한 시설물이다.

그 폭은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 충분한 1.8m 정도다.

해안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이다.

돌아올 때는 고하도 능선에 조성된 용오름 숲길을 이용하면 보다 아름다은 자연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고하도는 그렇게 멋지지만 절망의 역사를 희망의 역사로 바꾼 곳으로도 유명하다.

1597년 음력 916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우수영 울돌목에서 수군 13척의 배로 일본 수군 300척을 격퇴시켰다.

그 명랑해전에서 승리한 이충무공은 수군을 재정비코자 40일간 탐색했다.

그때 새로운 진을 설치한 곳이 바로 이곳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를 통해 호남의 곡창지대로 들어가는 입구다.

또한 서남해의 내륙을 잇는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까닭이다.

 

15971029일 이곳에 이충무공이 도착했다.

그때부터 군량미를 비축하고 수군을 재건했다.

더욱이 고하도 주변의 소나무를 모아 40여 척의 배(戰船)를 건조했다.

15982월에는 그 수군과 전선을 이끌고 강진의 고금도로 진을 옮겼다.

그해 11월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고 7년간의 임진왜란을 승리로 장식한 것이었다.

 

그런데 고하도는 그런 역사와 함께 육지면 재배지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1904년 우리나라 최초의 육지면 재배지가 바로 이곳 고하도였던 것이다.

그 당시 목포에 주재하던 일본 영사는 와카마쓰 도사부로였다.

그는 이곳이 일본의 육지면 재배보다 훨씬 유리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곳을 한반도 남부 지역의 육지면 생산기지로 만들고자 했다.

일제강점기 때 목화의 전남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이곳 고하도는 목화 재배가 활발했다.

 

목포시는 2016년부터 이곳에 목화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2020년에는 목화체험장을 완공했다.

목화체험장 안에는 사시사철 목화나무를 볼 수 있도록 재배하고 있다.

목화솜을 따서 실을 만드는 여러 기구들도 설치해 놓고 있다.

체험장 바깥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놀이기구도 세워 놓았다.

목화체험장 건너편에는 10월을 뽐내는 코스모스 꽃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벌써 올해 10월이 기다려진다.

 

고하도.

그곳은 목포역에서 차로 20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곳이다.

유달산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도 좋다.

물론 왕복차량도 제공한다.

고하도에 오면 누구라도 낭만과 역사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고하도 여행길 권채널여행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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